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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혜란 (2009-11-09 18:56:15)
미당 서정주의 생애와 작품세계 HIT : 1588
   서정주(徐廷柱)의 생애와 작품세계  



1. 생애

  호는 미당(未堂). (1915년~2000년)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문학사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가 우뚝선 시인이다.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는 ‘화사(花蛇)’ ‘동천(冬天)’ ‘문둥이’ ‘자화상’ 등 숱한 명시를 남긴 우리 현대시의 대명사이다. 특히 ‘국화 옆에서’는 국민적 애송시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는 1915년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부락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그의 제6시집 ‘질마재신화’의 산실인 그곳에서 미당은 9살까지 살았다. 서울 중앙고보 재학 중에는 사회주의에 경도돼 광주학생사건 소식을 듣고 시위를 주모하다 퇴학당했다. 이후 경제적인 균등한 분배만으로는 인간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사회주의를 버리고 방황을 시작한다. 일본인 톨스토이주의자 하마다가 서울에 세웠던 빈민촌에 들어가 넝마주이 노릇을 하는 등 떠돌다가 박한영(朴漢永) 대종사를 만난다. 자신의 암자(서울 안암동 개운사 뒤의 대원암)에 미당을 거두어 ‘능엄경’ 등 불교경전을 가르쳤던 스님은, ‘승재(僧材)가 아니라 시인될 재목’임을 간파하고 그를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에 입학시켰다. 여기서 미당은 불교와 문학이라는 평생의 반려를 만났다.

  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며 그해 말 김달진(金達鎭), 김동리(金東里), 오장환(吳章煥)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펴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활동을 했다. 이후 60년 가까이 시를 쓰면서 늘 새로운 시의 밭을 개간해왔으며, 그의 이런 정열은 후배 시인들의 귀감이 되어왔다. 시집 ‘화사집’(41년)에서 피·울음소리·뱀의 이미지로 인간의 원죄의식과 업고를 주제로 삼던 그는 ‘귀촉도(歸蜀途’(47년)를 통해 서서히 초기의 보들레르적 세계에서 벗어난다. 그 후 60년대의 시집 ‘신라초(新羅抄’ ‘동천’에 이르면 불교와 신화적 세계로 옮아간다.
  일가를 이룬 사람은 새로운 시도를 꺼리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미당은 한 세계를 이뤄 높이 평가받을 때 늘 새 문학적 신천지를 찾아 떠났다. 이룬 것을 버리고 끝없이 새 길을 찾아 나서는 까닭을 그에게 물으면 대답은 간단했다. “늘 하던 것을 하면 재미가 없잖은가”.

  잠시도 한자리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만이 아니다. 은퇴를 모르는 이 영원한 현역시인은 78세의 나이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는가 하면,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해 세계의 산 이름 1,625개를 매일 아침마다 ‘기도’처럼 외우기도 했다. ‘세계 문인 중에서 가장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임을 자처할 정도로 세계 구석구석을 다녔으니 ‘떠돌이의 노래’의 시인다운 방랑이었다. 77년엔 경향신문 후원으로 세계여행에 올라 137회에 걸쳐 ‘미당 세계방랑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또 30년 동안 동국대 국문과 교수로, 또 현대문학, 일간지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면서 ‘미당사단’으로 불릴 만큼 수많은 시인들을 양성해냈다. 고은 박재삼 이형기 황동규 박제천 홍신선 문정희 김정웅 문효치씨 등 내로라는 시인들은 거의 미당의 가르침이나 추천을 받았다. 장르는 다르지만 소설가 조정래 이원규 이상문 이용범씨, 평론가 홍기삼 송희복 장영우 황종연 박혜경씨 등도 그의 제자다.

  일제 말 10여 편의 친일작품을 썼던 일과 80년대 군부정권에 협력한 일은 두고두고 이 대시인의 안타까운 흠집으로 남는다. 그러나 미당의 행적을 비판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시에 대해서만은 거의 투항에 가까운 존경을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시는 한국어가 아름다워질 수 있는 극점이었으며 ‘시의 정부(政府)’였다.


2. 시세계

  미당 서정주의 초기시는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아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시풍을 보여주고 있다. 첫 시집 <화사집>에서 잘 드러나듯이 토속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인간의 원죄의식과 원초적인 생명력을 읊는 것이다. 하지만, 해방이 되면서 인간의 운명적 업고(業苦)에 대한 인식은 동양적인 사상의 세례를 받아 영겁의 생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 시기의 시집 <귀촉도>는 표제시에 있어서부터 동양적인 귀의를 시사해주는 것으로, 분열이 아니라 화해를 시적 주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갈등과 화해라는 심리적 리듬 이외에도 <국화 옆에서>, <밀어> 등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 옆에서

     순이아, 영이아, 또 돌아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늘인
     채일을 두른 듯, 아늑한 하늘가에
     뺨 비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밀어


  위와 같이 그의 시는 토착적인 정서와 고전적인 격조에의 지향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56년에 간행된 <서정주시선>에서는 <풀리는 한강 가에서>, <상리과원> 등의 작품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한과 자연과의 화해를 읊었고, <학>, <기도> 등의 작품에서 원숙한 자기 통찰과 달관을 보여주고 있다.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 상류와도 같은 융륭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뜨리는 몸뚱이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패기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꿈치에까지도 이쁜 꽃송아리들을 달았다. 멧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 새끼들이 조석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만 마리의 꿀벌들이 온종일 북 치고 소고 치고 맞이굿 울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      도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묻혀서 누워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취고 누워서 때로 가냘프게도 떨어져 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 잎사귀 들을 우리 몸 위에 받아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들과 나란히 마주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분면과, 한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속에 이것들이 잦아들어 돌아오는 ― 아스라한 침잠이나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 하는 미물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 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저것들을 축복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 나비의 어느 것, 또는 저것      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해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 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귀소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랜 종소리를 들릴 일이다.
                                                                    -상리과원



  서정주의 시는 <신라초>에 이르면서 새로운 정신적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의 초월적인 비전의 신화적인 거점이 되고 있는 신라는 역사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완전히 하나가 된 상상력의 고향과도 같다. 서정주는 <신라초>에서 불교사상에 기초를 둔 신라의 설화를 제재로 하여 영원회귀의 이념과 선(禪)의 정서를 부활시켰고, 유치환과 더불어 생명파 시인으로 불려졌다. 그의 사상적 기조는 영원주의, 영생주의이며, 문화사조상의 배경은 주정적 낭만주의, 예술관은 심미주의적 입장이다.
  <신라초> 이후에 더욱 진경을 보인 작품 50여 편을 모아 1968년에 펴낸 시집 <동천>에서는 불교의 상징세계에 대한 관심이 엿보인다. 이처럼 서정주의 시세계는 전통적인 서정세계에 대한 관심에 바탕을 두고 토착적인 언어의 시적 세련을 달성하였다는 점, 시 형태의 균형과 질서가 내재된 율조로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는 점 등이 커다란 성과로 평가된다.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썹을
    즈믄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동천


3. 작가의 말  

  (……) 그래 내, 아니 만 18세쯤 됐을 무렵에는 나는 어느새 서구적인 의미의 한 유치한 휴매니스트가 되어 있었고, 특히 프리디리히 니이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의 일역본은 내게는 참 매력적인 것이 되었었다. (……) 이와 아울러서 나는 보오들레에르 이후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영향도 받었으니, 이 공부에서 내게 큰 보탬이 된 책은 일본의 이때의 대표적인 프랑스 시 번역자였던 호리구찌 다이가꾸의 방대한 역시집 <월하의 일군>이었다.
  초현실주의 시와의 교류에 대해서도 여기 한 말씀 해두는 게 적합하겠다. 이것은 이 무렵에 일본에서 발간한 <시와 시론>이라는 두두룩한 시잡지를 이어 읽으면서 읽힌 것이니, 그 흔적을 알고져 하는 이는 내 처녀시집 <화사집> 속의 <서풍부> 같은 작품을 다시 한번 읽어 주시기 바랜다. 여기에서도 상상의 신개지를 마련하려는 의도는 확실히 보이고 있지 않은가?
  (……) <귀촉도>는 해방 뒤 3년만의 1948년에야 내게 되었으니 여기에는 자연히 일정 말기에 쓴 것들과 해방 뒤에 쓴 것들을 함께 수록할 수밖에 없었다. (……) 내 인생관과 시정신에도 암암리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으니, 그 요점을 간단히 말하면 ‘거북이처럼 끈질기고 유유하게 이 난세의 물결을 헤치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 나의 이런 동양사상에의 회귀는 1945년의 해방 뒤에도 한동안 내 인생관과 시정신의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었으니, 가령 내가 1947년 가을에야 새로 쓴 <국화 옆에서> 같은 작품에서도 독자들은 그것을 알아차리기에 어려울 건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내 어느 시집에도 넣지 않고 내던져버린 소위 ‘친일적’이라는 시 몇 편이 있지만, 그것은 내가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징용령에서 면제되는 잡지사였던 인문사에 편집기자로 있을 때 조선총독부의 또 하나의 새로 생긴 이름인 국민총동원연맹의 강제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쓴 것들이니, 이 점은 또 이만큼 이해해 주셨으면 고맙겠다.
  (……) 끝으로 말하려는 건 내 시의 표현의 문제인데, 나는 시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내 인생 경험을 통해 실제로 감동한 내용 아니면 절대로 시로서 다루지 않은 그 전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지켜갈 것이다. 비록 그것이 독서의 내용에서 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경우는 마찬가지였다. 시의 착상에서는 물론 그 표현에서도 남의 에피고넨이 된다는 것은 정말의 시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첫째 이점에서부터 시인의 출발은 제대로 시작되어야겠다.
  그래서 시인다운 시인이 그 표현에서 애써야 할 일은 세계의 시에 한 새로운 패턴을 마련해 보여주는 일이다.
                            - ‘나의 문학인생 7장’, 서정주, <시와 시학>, 1996년 가을호


4. 평론

  (……) 초기의 <화사집>에는 청년기 고유의 반항과 일탈 지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귀촉도> 이후 미당은 세계와 우리의 어제 오늘에 대해서 너그러운 긍정의 관점을 견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질마재 신화>에 보이는 ‘시골의 천치 같은 언동’조차 포옹하며 거기서 숨은 뜻을 읽어내는 데 드러난 긍정의 정신이 미당 시의 구심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긍정의 정신은 미당의 현실주의에서 온다. <떠돌이의 시>를 이야기하면서 김우창 씨는 ‘구부러짐의 형이상학’과 그것이 기초해 있는 현실주의를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굽음의 이존책(以存策)은 절대권력의 세계에서 눌린 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하여 가져야 했던 현실주의’라고 부연하고 있다. 현실주의는 이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이상의 실현을 기다리는 태도이기도 하다. 미당의 현실주의와 긍정의 정신은 역사와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룬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속의 가령 <정암 조광조론>에 잘 나타나 있다. (……)
  미당은 청년기에 <시인부락>이란 동인지의 동인이었다고 한다. 반세기 후 그는 인용부호가 빠진 이 나라 시인부락의 족장이 되었다. 족장의 사상을 깊이 검토하는 일은 이 자리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족장에 대해서는 시인부락 쪽에서 이런저런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작품을 읽고 그 의미를 헤아리는 것은 그런 일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민중을 혐오하는 엘리트주의자라고 셰익스피어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급진파 비평가가 늘 셰익스피어를 읽고 논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어디서나 뛰어난 재능은 희귀하다. 20세기 한국과 같이 척박하고 풍파 많은 사회에 한길에 정진하여 전례 없는 성취를 보여준 재능은 존경받아야 하며, 그 성취는 널리 수용되고 음미되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살아 있는 고전이 영세한 우리 터전에서 전범이 될 만한 작품은 현대의 고전으로 숭상되어 마땅하다. 에디슨이 없었더라도 라디오와 축음기는 결국 누군가의 손으로 발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없었다면 모차르트 음악 그 자체는 우리의 것이 못 되었을 것이다. 부족 방언의 요술사이자 시인부락 족장인 미당 시가 좀더 널리 향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이 글을 어디까지나 미당론의 일부임을 밝혀둔다.
         - ‘소리 지향과 산문 지향: 미당 시의 일면’, 유종호, <미당 연구>, 민음사, 1994

  
  서정주의 시경향은 5개로 분리된다. 중기가 2개로 나뉜다. 그래서 1기, 2기, 3기, 4기, 5기라고 하는데 간혹 중기인 2기와 3기를 합한 경우도 있다.
  1기는 '화사집' 시대로, 깊은 원죄 의식과 운명적 업고(業苦)에 심취하여 토속적 이미지에 의한 원초적 색감이 주조를 이루었으며, 2기는 '귀촉도' 시대로, 동양적 사상에로 접근하여 영겁(永劫)의 생명을 추구하는 생명파의 모습을 보여 준다. 3기는 '신라초' 시대로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서를 추구하였으며, 4기는 '동천'의 시대로 '신라초' 시대를 더욱 심화하여 신라(新羅)와 불교적인 세계에 더욱 깊이 들어간 시기이다. 5기는 '질마재 신화' 시대로 3기에서부터 보여 오던 토속적인 감동의 세계가 의식의 한계를 벗어나서, 원시적인 무속 신앙에 심취한 시기이다. 이처럼 그의 시 세계는 인간의 생명 자체의 근원 및 본질에 대한 집요한 추구로 생명의식을 앙양(昻揚)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누리미디어, 2002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자료 정리: 곽혜란
(2009-11-11 10:01:16)  
이숙희
정말 유익한 자료였습니다
출발하는 차안에서
시는 서로 돌려가며 낭송하고
음미하고
곽대표님 자료 준비 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이런 준비 하나하나가 문학바탕을 우수선정잡지 반열에
올려 놓은 영광을 차지하셨군요
자상한 준비 감사드립니다
(2009-11-13 11:42:13)  
박수원
차 안에서 서로 나누는 미당선생님에 대한 자료는
정말 유익한 자료였습니다.
좋은 자료 준비해 주신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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